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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시,영화, 전시,공연

아내를 닮은 꽃

 

살아 가면서 잊혀져 가는 아름다운 추억들이 참 많다.

 

어릴 때 봄이 오면 엄마가 겨우내내 봉지봉지마다 보관해 두었던 씨앗들을

그닥 넓지도 않은 앞마당 꽃밭에 뿌리시고 가꾸시던 일.

봉지마다 이름이 적혀 있던 꽃씨들을 

줄을 맞추어 가며 씨앗을 뿌리곤 하셨지.

맨 앞줄에는 키가 작은  채송화부터 다음 줄에는 봉숭아,과꽃, 맨드라미, 코스모스,

또 뭐였더라?... 맞아...그 뒷줄에는 분꽃,,그리고 나팔꽃까지...

그리고는 담벼락 밑엔 수세미 씨를 뿌리시고는  막대를 세우고 줄을 타고 올라가게 해 놓으셨지...

그리고 한 여름이 되면 그것들이 온통 마당을 하나 가득 채워 제각각의 예쁜 꽃들을 피어

마당엔 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지.....

이 꽃들 이름만 생각해도 엄마가 생각나고...

어머니 보다는 엄마라고 하는 말이 더 내 마음에 와 닿는다.

 

지금은 도시 아파트 어디를 가도 그런 추억을 생각할 만한 꽃밭이 없다.

그런 추억을 생각하면서 시를 올린다.

 

 

 

 

《 아내를 닮은 꽃 》

 

한 낮의 뜨거웠던 태양이

서편으로 기울어 저녁이 찾아오면

그제서야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하루의 수고로운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을 웃음으로 맞이하는 아내처럼

저녁 무렵에야 환하게 피어나는 분꽃이

바로 그꽃입니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엔

분꽃이 피는 것을 보고 밥을 안치고

식구들의 저녁 준비를 하기도 했습니다.

 

까만 씨앗 속에 든

흰 가루가 분(粉) 같다하여

이름마저 분꽃이 된 이 꽃을 볼 때마다

이 세상의 아내를 닮은 꽃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녁 무렵에 피어나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분꽃처럼

아내가 웃으면 세상의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어둡던 집안에도 불을 켠듯 환해집니다.

 

분꽃 피는 저녁이 사랑스럽습니다.

 

 

글. 사진 - 백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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